1. 가시가 있다는 건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식이다
선인장을 처음 가까이서 본 건 식물원 구석이었다.
작고 단단한 몸을 하고는 누가 다가오지 못하게 수많은 가시를 품고 있었다.
처음엔 왜 저렇게 뾰족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됐다.
선인장의 가시는 누군가를 찌르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걸.
식물 중에도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가 있다.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생존에 가까운 본능이다.
건조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물을 적게 쓰고, 잎 대신 가시를 선택한 식물의 방식은 어쩌면 우리와도 닮아 있다.
상처를 피하기 위한 모든 선택들이 결국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
그것은 강함이 아니라, 연약함을 지키는 기술이다.
2. 나도 가끔, 선인장처럼 굳고 뾰족해진다
사람들도 때때로 선인장이 된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말이 적어지고, 감정을 감추고, 필요 이상의 선을 긋는다.
무뚝뚝한 말투, 차가운 표정, 바쁘다는 핑계.
모두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한 감정의 가시들이다.
그 뾰족함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꼈던 순간, 기대가 부서졌던 기억, 믿음이 배신당했던 일들은 나를 서서히 굳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선인장이 된다.
늘 내 안을 촉촉하게 유지하고 싶지만, 바깥이 너무 뜨거울 땐, 물을 아끼기 위해 가시를 세운다.
3. 보호가 끝나면, 가시도 천천히 사라진다
모든 식물이 가시를 가졌던 건 아니다.
어떤 식물은 상처받은 후에, 환경이 변하면서 가시를 길러내기도 한다.
그 말은 곧 가시도,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어떤 선인장은 외부 환경이 안정되면 가시가 줄어들기도 하고, 덜 자극적인 형태로 변하기도 한다.
우리 마음도 그렇다.
충분히 쉬고, 충분히 돌보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관계 안에서는 더 이상 뾰족해질 필요가 없다.
말이 부드러워지고, 표정이 풀리고, 부탁도 할 수 있게 된다.
가시는 나쁜 게 아니다.
그건 나에게 필요한 ‘일시적인 울타리’일 뿐이다.
진짜 회복은, 언젠가 가시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4.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도 괜찮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넓게 뻗은 잎처럼 사람을 쉽게 품고,
어떤 사람은 선인장처럼 조심스럽고, 일정한 거리 안에서만 숨을 쉰다.
그리고 그 모든 방식은 정답이 아니다. 그냥 살아남는 법일 뿐이다.
누군가가 말이 없고, 무뚝뚝하고, 선을 긋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건 아니다.
그건 그 사람의 방식으로 세상을 견디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가시를 가졌다고 해서 사랑받을 수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가시 덕분에, 더 오래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 선인장은 사막에서 피어난 꽃이다.
가시를 가졌기에, 그 속의 수분은 더 단단히 지켜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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